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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알고보니 사람 OO으로 만들어져

교육 이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8. 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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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550년대 유럽에서는 모든 사람이 열망하는 약이 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도 먹기만 하면 단번에 일으켜 세우고, 뼈가 부러졌을 때도 이 약을 바르기만 하면 나았다. 심지어 신비의 정력제라고도 불렸다. 중세 유럽 최고의 명약으로 손꼽힌 약의 이름은 바로 '무미야'였다.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과거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던 ‘무미야’에 대해 소개했다.

무미야는 가벼운 감기나 두통에 사용하는 상비약 역할 뿐만 아니라 피부에 난 상처나 화상에 바르기도 했고, 뇌전증이나 중금속 중독 등 심각한 질병에도 사용했다. 무미야는 용도에 따라 물약이나 가루약, 연고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또한, 무미야의 가격은 천차만별로 다양했으며, 무수히 많은 종류의 무미야가 존재했다. 중세 유럽 당시 집집마다 거실에 비상 상비약으로 무미야가 한 병씩 놓여있었을 만큼 무미야는 필수품이었고, 만약 무미야가 떨어질 경우, 당장 무미야를 구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안해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1893년 영국의 이집트 학자 ‘월리스 버즈’가 '미라'라는 책을 발매했는데, 그 책 안에는 무미야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중세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며 상당한 인기를 모았던 무미야가 사실은 이집트 미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미라를 약으로 사용했다는 말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미라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왕족이나 귀족의 시신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특수한 약품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보통 미라를 만들 때, 내장을 제거한 뒤에 붕대로 몸을 단단히 싸맸는데, 이때 사용하는 붕대가 보통 붕대가 아니었다.

이 붕대는 몰약 성분과 향신료, 희귀한 허브가 잔뜩 들어간 특수한 용액에 오랫동안 담가두었던 붕대였던 것이다. 특히 붕대의 주요 성분이었던 몰약은 이집트 근처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뽑아낸 성분으로, 살균이나 정화 능력이 뛰어나 귀한 약재로 아기 예수 탄생 시 동방박사의 선물로 성경에도 등장했다.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일찌감치 몰약의 효능을 알았던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미라를 만들 때 몰약을 많이 사용한 것이다. 몰약 나무가 전혀 나지 않았던 유럽에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럽에서는 몰약이 잔뜩 스며든 붕대는 물론, 미라의 시신까지도 약효가 있을 것이라 믿어 약으로 사용했다.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중세에 접어들면서 미라로 만든 무미야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대중적인 약이 됐다. 급기야 무미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약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실제 몰약보다 미라로 만든 무미야의 약값이 더 비쌀 정도였다.

당시 중세 유럽은 이집트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귀족들은 집을 이집트식으로 장식하는가 하면 파티장 한가운데는 미라를 한 구 놓는 것이 유행이었다. 무미야의 경우도 당시 관심이 반영됐다. 사람들은 몰약 그 자체보다는 미라가 가지고 있는 영혼 불멸의 이미지에 반해 미라가 더 약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무미야가 인기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이집트 미라가 필요했다. 때문에 해마다 수백 구에 달하는 이집트 미라를 수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는 미라를 유통해주는 전문 브로커까지 생겨났다. 미라는 늘 부족했고, 전문 브로커들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급기야 이들은 이집트로 도굴단을 보내 밀매까지 하는 등 미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시 미라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브로커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행해지는 새로운 수법이 생겨났다. 급기야 미라가 부족해지자 브로커들은 부랑자나 죄인의 시신, 병에 걸려 죽은 시신을 마치 이집트 미라인 양 속여서 팔아 넘겼던 것이다.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564년 프랑스 명의로 불린 '라퐁텐'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무미야 약효에 이상을 느끼고 당시 가장 큰 미라 거래소를 찾아간다. 라퐁텐은 "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큰 미라 중개상점을 찾아가서 미라를 확인했다. 그곳에서 본 것은 너무 충격적이었다"라고 기록했으며, "죄인들과 전염병에 걸린 병자들의 시신으로 미라를 만들고 있었다. 이 사실을 널리 알려 더이상 미라가 약으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의사 라퐁텐이 무미야가 지닌 부작용과 문제점을 널리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무미야의 인기는 전혀 사그라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무미야의 정확한 성분과 효능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미야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자그마치 300여 년간 유럽에서 최고의 약으로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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