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정글로 사라졌던 소녀, 12년 뒤 법대 강의실에 앉다
바르셀로나에서 볼리비아 우림까지, 나다 이트랍이 침묵을 깨고 돌아오기까지

2013년 8월 27일 밤, 9살 소녀가 바르셀로나에서 야간 버스에 올랐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보상으로 '볼리비아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믿었다. 옆자리에는 같은 동네에 살던 30대 남성 그로버 모랄레스가 있었다. 부모는 이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아홉 달 동안 이어진 감금이 됐다.
소녀의 이름은 나다 이트랍. 영국 일간 가디언이 5월 발행한 롱리드 「9살에 납치된 소녀, 9개월 만에 정글에서 발견되다」(질스 트레믈렛 기자)는 12년이 지난 지금, 21살 법대생이 된 그가 자기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로 결심한 과정을 추적했다. 가디언은 "구조가 끝이 아니었다"는 한 문장으로 기사 부제를 달았다.
'좋은 학생'에게 주어진 함정
모랄레스는 나다를 데리고 볼리비아의 코카잎 재배 지역으로 들어갔다. 강제 노동, 학대, 폭력이 9개월간 이어졌다. 스페인 경찰과 카탈루냐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나다를 구해낸 건 의외의 사람들이었다. 현지 코카 농민 공동체가 외지인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챘고, 자체 협의를 거쳐 모랄레스를 붙잡았다. 나다는 2014년 3월 17일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랄레스는 이후 아동 인신매매와 성적 학대 혐의로 1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가디언이 주목한 건 '구조 이후'였다. 돌아온 소녀를 기다린 건 학교 친구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무엇을 묻고 무엇을 묻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어른들의 어색함이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십 대 시절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자신의 체류 자격을 정리해준 사람도, 트라우마 치료를 연결해준 사람도 국가가 아닌 한 명의 기자 노이스 살라였다.
"가해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고발한다"
현재 나다는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한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그는 자기를 가둔 사람보다, 자기를 일찍 알아보지 못한 시스템을 더 자주 이야기한다. 카탈루냐 정부를 상대로 한 직무유기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고, 책과 다큐멘터리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가해자는 이미 감옥에 있다. 내가 싸우는 건 같은 일이 또 일어나는 구조다"라는 게 그가 인터뷰에서 반복하는 말이다.
나다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길게 답한 대목은 '용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표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텔레비전에 나가 자기 이야기를 한 뒤 전 세계에서 학대받는 또래 소녀들의 이메일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도움을 다른 아이들에게 건네는 일, 그것이 그가 유엔 연단에 서고 싶다는 꿈을 꾸는 이유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통계가 되는 순간
나다의 사례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2024년 12월 발표한 「세계 인신매매 보고서 2024」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확인된 인신매매 피해자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 비해 25% 늘었다. 특히 아동 피해자는 31%, 여아 피해자는 38% 증가했다. 아동은 이제 전체 피해자의 약 40%를 차지한다. 강제 노동 목적의 인신매매는 같은 기간 47% 급증했고, 온라인 사기 범죄에 강제 동원되는 사례도 6년 만에 8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도 무관하지 않다. 2023년 1월 시행된 「인신매매등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후, 정부는 '제1차 인신매매등 방지 종합계획(2023~2027)'을 가동했고 미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1등급 평가를 회복했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사회는 비(非)성적 착취 피해자에 대한 지원 부족, 신고의무자 교육의 형식화, 처벌 수위의 미약성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실종 통계도 빈틈을 비춘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실종 신고는 약 4만 9,600건, 이 가운데 아동은 2만 5,692명에 달했다. 121명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고, 그중 64명이 아동이다. 발달장애 아동의 미발견율은 비장애 아동보다 눈에 띄게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1시간 이내 발견 비율이 늘었다'는 좋은 뉴스 뒤편에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121개의 이름이 남아 있다.
구조 이후, 우리는 무엇을 묻고 있나
가디언 기사가 한국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납치된 아이'가 발견됐을 때만 짧게 분노하고, 돌아온 뒤의 긴 시간에는 카메라를 끄고 있는 것은 아닌가. 9개월의 감금보다 12년의 회복이 더 길었고, 그 시간을 버틴 건 시스템이 아니라 한 명의 기자, 몇몇 자원 활동가, 그리고 결국 본인이었다.
나다는 가해자를 '이미 끝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가 법대를 택한 이유는 다음 9살을 위해 법을 더 잘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실종 1시간 골든타임'을 줄이는 것만큼 진지하게 '발견 이후 10년'을 설계하고 있는지, 그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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