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송유관 옆 광케이블, 빅테크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새 실크로드
이란 드론이 두바이 데이터센터를 마비시킨 그날 이후, 세계의 인터넷은 바그다드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2026년 3월 1일 새벽, 이란 샤헤드 드론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바레인의 아마존웹서비스(AWS) 데이터센터를 강타했다. 두바이의 배달앱 카림이 멈췄고, 에미리트 NBD와 ADCB 같은 은행 결제망이 잠시 작동을 멈췄다. 한 도시 전체가 갑자기 '오프라인'이 됐다.
같은 시간, 바그다드 외곽의 한 통신실에서는 정반대 풍경이 벌어졌다. 트래픽 그래프가 평소의 몇 배로 치솟았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일제히 데이터 경로를 갈아탄 것이다. 새로 떠오른 우회로는 의외의 장소를 지난다. 이라크 남부에서 터키 국경까지 이어진 송유관, 그 옆에 깔린 광케이블이다.
국제 매체 Rest of World는 지난 5월 1일자 기사에서 "거의 모든 하이퍼스케일러가 이라크 육상 경로의 다크파이버(dark fiber) 용량을 사들이고 있다"는 IQ네트웍스 전략고문 마틴 프랭크의 발언을 전했다. 다크파이버란 통신사가 깔아둔 채 비워둔 광섬유 가닥을 의미한다. 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가 이 가닥을 통째로 임차해 자기 장비를 양 끝에 달고 직접 신호를 쏜다. 사실상 자기들만의 사설 고속도로다.
해저 케이블이라는 약점
지구를 도는 인터넷 데이터의 95% 이상은 해저 케이블을 따라 흐른다. 그런데 그 케이블 다발이 한곳에 몰리는 병목 지점이 있다.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통신의 90% 이상이 이집트를 거쳐 홍해로 내려가는 구조다.
이 병목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2024년 2월 사고가 보여줬다. 후티 반군 미사일에 맞은 화물선 루비마르호가 표류하다 닻이 케이블을 찍었고, AAE-1·EIG·시컴 등 3개 시스템이 동시에 끊기면서 아시아-유럽 트래픽의 4분의 1이 영향을 받았다. 복구에는 수개월이 걸렸다. 한 번 끊긴 해저 케이블은 전용 수리선이 사고 해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손도 댈 수 없다.
3월의 드론 공격은 같은 위험을 데이터센터로 옮겨놓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디지털 병목 중 하나가 됐다"고 표현했다. 빅테크 입장에서는 '구간을 분산하지 않으면 다음 사고 때 회사가 통째로 멈춘다'는 메시지였다.
송유관을 따라 흐르는 데이터
해법은 의외로 옛 자원 인프라에서 나왔다. 이라크 정부는 남부 바스라 유전 지대부터 터키 국경까지 거대한 송유관망을 운용해왔는데, 그 옆은 이미 보안 펜스와 도로, 정비 통로가 갖춰진 '기성품 회랑'이다. 새로 토지를 매입하거나 외교 협상을 벌일 필요 없이 광케이블만 깔면 된다.
이라크 기업 IQ네트웍스는 이 송유관 회랑을 따라 광케이블을 깔고 '실크 루트 트랜짓(Silk Route Transi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3년 11월 가동을 시작했고, 페르시아만에서 유럽까지 지연 시간을 약 70밀리초로 줄였다. 기존 해저 우회로(약 150밀리초)의 절반 수준이다. 70밀리초는 사람 귀에는 똑같이 들리지만, 화상 회의·금융 거래·AI 추론 서비스에서는 사용자 체감 품질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다.
현재 이 경로의 용량은 HD 화질 영상 40만 개를 동시에 송출할 수 있는 규모로 추산된다. 유럽 구간 확장은 2027년 초로 예정돼 있다. 텔레지오그래피의 폴 브로드스키 분석가는 "이 수요는 결국 구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가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의미하는 것
한국은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무관하지도 않다. 네이버와 카카오, 삼성SDS, KT가 운영하는 글로벌 서비스 상당수가 AWS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의 중동·유럽 리전을 거친다. 두바이 한 곳의 장애가 카림과 에미리트 NBD를 멈춘 것처럼,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 서비스도 한 케이블에 묶여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네이버는 최근 모로코에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했고, SK와 AWS는 울산에 60,000개 GPU를 갖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다. 인프라가 어디에 놓이고, 그 사이를 어떤 케이블이 잇느냐는 더 이상 통신 엔지니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두바이에서 결제 한 번이 막히는 순간 카림 아르샤드라는 평범한 금융 자문가가 "숨이 막힐 만큼 답답했다"고 토로한 것처럼, 인프라 지정학은 결국 평범한 사용자에게 도착한다.
송유관을 따라 데이터가 흐르는 풍경은 어딘가 상징적이다. 20세기 세계가 석유를 둘러싸고 재편됐다면, 2026년의 세계는 그 옆 도랑에 깔린 광케이블 가닥을 두고 다시 줄을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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