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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에 한을 풀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런웨이로 만든 '분장대회' 현장

박물관 전시실에서 분장을 한 인물과 두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도현
입력 2026.09.21 11:10
"유물에 한을 풀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런웨이로 만든 '분장대회' 현장
▲ 박물관 전시실에서 분장을 한 인물과 두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물관의 정적인 공기가 순식간에 열광적인 런웨이로 변했다. 지난 19일 토요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6 국중박 분장대회 전국편'의 결선이 열렸다. 유물을 단순히 관찰하는 대상이 아닌, 직접 몸으로 입고 표현하는 참가자들의 열기로 현장은 그야말로 '멧 갈라(Met Gala)'를 방불케 했다.

"유물의 사연을 품다" 직장인부터 모델까지, 각양각색의 변신

이번 대회는 유물이 가진 형태와 서사를 참가자들이 어떻게 재해석했는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스브스뉴스 영상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단순한 코스튬을 넘어 유물의 역사적 배경까지 무대에 녹여냈다.

'엉금엉금' 팀은 단종 어보와 정순왕후 어보를 각각 맡아 등장했다. 이들은 "유물에 있는 사연을 조금 품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단종과 정순왕후가 겪었던 역사적 한을 이번 기회에 풀어드리고 싶다는 진심을 전했다. 제약회사 홍보팀과 엔터사 행사 기획자로 일하는 이들은 "우리가 한번 가서 미쳐 날뛸 수 있는 기회, 최고의 광대가 될 수 있는 기회"라며 유쾌한 무대를 선보였다.

모델 출신 이혜정 씨는 '간돌검'으로 변신해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돌을 깎아 만든 검이라, 운동선수에서 모델로 전향하며 스스로를 갈고닦았던 모습이 비슷하기도 해서 더 애착이 가는 유물"이라며 유물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는 특별한 소회를 밝혔다. 모델로서 많은 무대에 섰음에도 이번 무대는 너무 긴장된다는 소감을 덧붙이기도 했다.

"콤플렉스가 트레이드 마크로" 유물과 함께 성장한 참가자들

대회는 단순히 웃음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참가자 개인의 성장과 맞물리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금동유리입상' 팀의 초등학생 참가자 조유리 양은 "엄마가 용돈을 준다고 꼬셔서 오게 됐다"는 귀여운 고백과 함께, 무대를 통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런웨이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 미간에 있는 점 때문에 친구들이 인도인이라며 놀려 속상했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그 점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 직원들로 구성된 '직장가입자들' 팀은 평소 직원 출연 릴스를 찍기도 하는 재기발랄함을 바탕으로 무대를 꾸몄다.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을 재현한 '학교종이 에밀레' 팀은 디자인 학부 동기들로 구성되었으며, 종의 울림을 표현하기 위해 한 명은 종목을 맡고 한 명은 종을 조종하는 스님 역할을 맡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동 방울로 분장한 '무영모' 팀 역시 "몸을 최대한 활용해 유머를 표현하고 싶었고, 청동 방울을 본 순간 운명의 만남이라 생각했다"며 짤랑거리는 움직임으로 무대를 채웠다.

백자 잉어 모양 연적, '대상'의 영예 안아

치열한 경합 끝에 영광의 대상은 '백자 청화 잉어모양 연적'을 재현한 전은슬 씨에게 돌아갔다. 간호학과 4학년인 그녀는 평소 쭈꾸미나 고라파덕 같은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유물 중에서도 그런 미트를 가진 캐릭터를 찾다가 이 유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전은슬 씨는 수상 소감에서 "평소에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는데, 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정말 행복하다"며 "이번 경험이 큰 용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유물을 향한 애정과 개인의 도전이 만난 이번 대회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경계를 허물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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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현
하비이슈 · 문화 & 라이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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