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투여 후 12시간 검사 안 해 환자 사망…대법 "의료진 과실"
고농도 산소를 투여한 뒤 12시간 넘게 동맥혈가스검사를 하지 않아 환자가 숨진 사건에서 대법원 3부가 의료진 과실을 인정하고 원고 패소 원심을 깨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형사재판에서는 주치의 무죄가 확정됐지만, 민사에서는 인과관계 증명책임 완화 법리가 적용됐다.
고농도 산소를 투여한 뒤 12시간 넘게 혈액 검사를 하지 않아 환자가 숨진 사건에서 대법원이 병원 측 과실을 인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숨진 환자의 유족이 부산의 한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과 의료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경향신문·세계일보·한국경제 등이 19일 보도했다.
쟁점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에게 산소를 늘린 뒤 언제 동맥혈가스검사를 해야 하느냐였다. 2심은 검사 시점이 의사의 재량이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진료지침과 감정 의견을 근거로 검사가 지나치게 늦었다고 판단했다.

산소 늘린 뒤 의식 흐려졌는데…검사는 오후에야
보도를 종합하면 고령의 남성 환자 A씨는 과거 폐 일부를 절제한 적이 있었다. 2018년 1월 폐렴과 COPD 급성 악화로 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약 2주 만에 퇴원했고, 같은 해 2월 부종 등의 증상으로 다시 입원했다.
재입원 며칠 뒤 산소포화도가 80% 안팎까지 떨어지자 의료진은 산소 공급량을 늘렸고, 다음 날 새벽 3시 50분쯤에는 산소마스크로 분당 10L의 고농도 산소를 투여했다. A씨는 같은 날 오전 9시쯤부터 의식이 혼미해졌지만, 동맥혈가스검사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이뤄졌다.
검사 결과 몸속에 이산화탄소가 과도하게 쌓인 상태가 확인됐다. 의료진은 산소량을 줄이고 인공호흡기를 달았으나 A씨는 곧 심정지를 일으켰고, 반혼수 상태로 지내다 그해 3월 숨졌다.
| 시점 | 경과 |
|---|---|
| 재입원 며칠 뒤 | 산소포화도 80% 안팎으로 저하, 산소 공급량 증량 |
| 다음 날 새벽 3시 50분쯤 | 산소마스크로 분당 10L 고농도 산소 투여 |
| 같은 날 오전 9시쯤 | 의식 혼미 |
| 같은 날 오후 4시 이후 | 동맥혈가스검사, 이산화탄소 축적 확인 |
| 같은 날 오후 늦게 | 인공호흡기 적용 뒤 심정지, 반혼수 |
| 3월 | 사망 |
지침을 '권고'로 본 2심, 대법원서 뒤집혀
COPD 진료지침은 산소요법을 시작한 뒤 30~60분 안에 동맥혈가스검사를 하도록 권고한다. COPD 환자는 고농도 산소를 받으면 몸속에 이산화탄소가 쌓여 의식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A씨의 경우 고농도 산소 투여부터 검사까지 12시간 넘게, 의식이 흐려진 뒤로도 7시간가량이 지났다.
1심은 검사 지연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되 기저질환 등을 고려해 병원 책임을 20%로 제한하고, 유족에게 모두 약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반면 2심은 진료지침이 권고 사항에 불과하고 의료진이 산소포화도를 계속 관찰했다며 과실을 부정했다. 고령과 중한 기저질환을 고려하면 인과관계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지침의 권고가 국내 임상 수준에서 벗어난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감정 의견 등을 들어 의료진이 제때 검사하지 않은 과실을 인정했다. 이어 검사 지연이 의식 악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고, 병원 측이 과실과 사망이 무관하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형사 무죄여도 민사 책임은 따로
이 사건의 주치의는 앞서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을 요구해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민사는 기준이 다르다. 대법원은 2023년 8월 31일 선고한 판결(2022다219427)에서 환자 측이 진료상 과실과 그 과실이 손해를 일으켰을 개연성을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의료 측은 손해가 다른 원인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증명해야 이 추정을 뒤집을 수 있다. 이번 판결도 같은 법리를 따랐다.
사건을 돌려받은 부산지법은 A씨의 기저질환이 사망에 미친 영향 등을 따져 병원의 배상 범위를 다시 정하게 된다.
의료분쟁 조정 접수, 최근 5년 새 최대
의료사고를 둘러싼 다툼은 늘어나는 추세다. 메디게이트뉴스가 보도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중재원 상담 건수는 6만2594건으로 2024년(5만2589건)보다 19.0% 늘었다. 같은 해 조정·중재 접수는 2605건으로 1년 새 24.7% 증가해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많았다.
| 항목 | 수치 |
|---|---|
| 상담 건수 | 6만2594건(전년 대비 19.0% 증가) |
| 조정·중재 접수 | 2605건(전년 대비 24.7% 증가) |
| 조정 성공률 | 70.6% |
| 평균 처리 기간 | 79.4일(2021년 101.3일) |
조정 절차는 소송보다 빠르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법원으로 간다. 이번 사건은 2018년 환자가 숨진 뒤 1심과 2심, 상고심을 거쳐 8년 만에 다시 하급심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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