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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적 책임일 뿐" 병원 매뉴얼 뒤에 숨은 의료사고, 조작된 기록과 0.6%의 승소율

의료 사고 발생 시 병원의 대응 매뉴얼과 진료기록 조작 의혹, 그리고 0.6%라는 극히 낮은 완전 승소율 속에 방치된 환자 가족들의 현실을 짚어봅니다.

한도경
입력 2026.09.23 08:39
"도의적 책임일 뿐" 병원 매뉴얼 뒤에 숨은 의료사고, 조작된 기록과 0.6%의 승소율
▲ 야외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환자 보호자의 모습.

건강한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갔던 환자가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했을 때, 남겨진 가족들이 마주하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의료 과실을 입증하기 위한 끝없는 싸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과 병원의 대응 방식이 이들을 두 번 울린다. KBS 다큐의 '취재파일 K' 영상에 따르면, 의료 사고 발생 시 대형 병원들은 전문적인 대응 매뉴얼을 가동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환자 측을 압박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과실은 없다" 병원의 대응 매뉴얼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병원은 진료를 담당한 의사 대신 원무과나 법무팀이 전면에 나선다. 병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의료진은 정해진 대응 매뉴얼에 따라 '섣불리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환자에게 안타까움을 표하는 '도의적 책임'은 언급할 수 있어도, 법적 과실을 인정하는 순간 발생하는 책임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대응 과정에서 병원은 환자 측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경제적 요소를 활용하기도 한다. 영상 속 사례에서는 신장 이식 수술 후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2년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의 가족이 8천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 독촉을 받는 상황이 그려진다. 환자 측이 진료기록 감정을 의뢰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병원 측은 과실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 필요한 비용을 의미하는 '위로금'을 제시하며 합의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의료 사고와 관련해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될 경우, 병원이 진료비 정산을 요구하거나 보험 혜택 적용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환자 가족을 압박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일부 병원은 환자 측이 소송을 제기하자 "치료를 하지 않겠다"며 진료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20군데 수정된 진료기록부, 0.6%에 불과한 완전 승소율

의료 사고의 핵심 쟁점은 '진료기록부'다. 입원 상태부터 수술 경과, 의사의 조치 등이 기록된 이 문서가 조작될 경우 환자는 과실을 입증할 길을 잃는다. 영상에서는 조직 검사 후 사망한 환자의 가족이 소송 과정에서 병원이 법원에 제출한 기록이 기존 기록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례를 소개한다. 진료기록부에서 수정된 내용은 20여 군데에 달했으며, 없었던 조치가 추가되거나 의사가 환자에게 조치를 취한 시간까지 바뀌어 있었다.

이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각한 상황에서 환자가 의료 과실을 완전히 입증해 승소할 확률은 극히 낮다. 영상에 제시된 통계에 따르면, 의료 소송 접수 건수는 2010년 870여 건에서 2013년 1,100건으로 증가했으나, 환자가 요구하는 배상금을 모두 받아내는 '완전 승소율'은 2013년 기준 0.6%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은 정보의 폐쇄성과 더불어, 의사가 의사를 감정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연간 1만 7천 명의 예방 가능한 사망자, 그러나 부재한 실태조사

의료 사고의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크다. 2012년 울산의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예방 가능한 병원 내 안전 사고 사망 환자는 매년 약 1만 7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약 5천 명)의 3배를 상회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러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전국적인 실태조사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의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신청 건수는 최근 2년 사이 500여 건에서 1,800여 건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중재 제도는 병원과 환자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만 절차가 시작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병원이 거부하면 강제할 규정이 없어, 사실상 병원의 의사에 따라 조정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다. 정부가 의료사고 보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환자 안전법'을 제정했으나, 이 역시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 의료 사고의 피해자들은 입증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폐쇄적인 의료 정보의 벽 앞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KBS #취재파일 K #의료 사고 #진료기록부 #의료분쟁조정중재원 #환자 안전법 #울산의대
한도경
한도경
하비이슈 · 사회·이슈 담당

하비이슈에서 사회·이슈 분야를 주로 취재합니다. 문화·라이프, 뉴스 기사도 함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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