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팅 시 30초간 '평문' 노출, 이지스함·스텔스기 암호 장비의 치명적 결함
두 남성이 실내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 군이 운용하는 이지스함의 레이더와 스텔스기 F-35 등 최첨단 무기체계의 보안을 책임지는 암호 장비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드러났다. 육·해·공군 통신망에 필수적인 암호 장비가 데이터를 제대로 암호화하지 못해, 2급 군사기밀이 원문 그대로 노출되는 현상이 확인된 것이다.
"로그인 순간 서버가 넘어간다"…전문가가 경고한 보안 구멍
KBS 다큐 영상에 따르면, 군의 보안 컴퓨터에 장착된 M 모델 암호 장비는 데이터를 암호화하여 전송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기밀 문서의 원문이 그대로 전송되는 오류를 보였다. 이 문제를 처음 발견한 곳은 공군이었다. 공군은 지난 2013년 내부 시험을 통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작전 통신망과 동일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암호 장비를 서버와 클라이언트 두 곳에 연결해 기밀 문서가 암호로 바뀌는지 시험했으나, 숫자들의 조합으로 보낸 데이터가 전송 과정에서 암호 장비를 거친 뒤에도 원문 그대로 나오는 것을 확인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공군은 파일의 원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 보안에 취약하며, 암호 장비가 기밀을 보장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현장 전문가의 증언을 통해 더욱 구체화됐다. 당시 기무사 고위 관계자와 암호 담당 장교들이 참석한 비공식 회의에 분석 데이터를 제시했던 한 보안업체 전문가는 "서버 관리자가 로그인을 하는 순간에 암호 통신 장비에서 암호화가 풀려버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되면 서버는 순식간에 해커에게 넘어가는 것이며, 공격자에게 시간을 상당히 벌어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결함"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전문가는 당시 기무사 암호 담당자들까지 소집된 회의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공유되었음을 강조했다.
국방부의 '시험 환경 탓' 해명과 뒤늦은 결함 인정
결함이 드러나자 군 당국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자, 암호 장비를 거쳐도 원문이 노출되는 현상은 "시험 환경이 잘못 설정돼서 생긴 문제"라며 초기에는 문제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했다. 영상 속 정보본부장의 답변에 따르면, 국방부는 2014년 4월에 있었던 시험 결과에 대해 시스템 설치를 잘못한 것이라 해명하며, 이후 실무 회의를 통해 장비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지적이 이어지자 국방부는 결국 결함을 인정했다. 국방부는 네트워크 암호 장비의 가동 초기에 잠시 암호화가 안 되는 등 개선할 점이 나왔다고 뒤늦게 밝혔다. 영상 속 관계자는 "부팅 시에 한 30초 정도 평문으로 전송되는 현상이 있었다"며, 해당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10월부터 12월까지 장비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군은 보안 취약점이 확인된 이후, 암호 장비를 운용하는 부대와 기관에 방화벽과 침입 방지 시스템을 갖춘 보안 장비를 반드시 운용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암호 장비를 재부팅할 때는 내부 연결을 제거하고 초기화를 마친 뒤에 다시 결합하라고 각 군에 지시하는 등 운영상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를 내렸다.
수백억 원대 수의계약과 '암피아 커넥션' 의혹
보안 결함뿐만 아니라 장비 납품 과정의 투명성 문제도 불거졌다. 해당 암호 장비를 제작해 군과 정부 부처에 납품하는 업체는 1999년 설립된 곳으로, 국내 각종 컴퓨터 서버에 연결된 6만여 개의 암호 보안 장비를 납품하며 수백억 원대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일부 군 출신 인사나 국가 연구소 퇴직자들이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이와 관련한 의혹이 다뤄졌으며, 한 전문가는 "만약 이것이 민수 제품으로 조달되었다면 검수 통과가 되지 않았을 제품"이라며 군이라는 특수성이 보안 검증의 문턱을 낮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정보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암호 체계의 결함과 납품 과정의 불투명성이 맞물리며, 국가 안보 시스템의 구조적 허점에 대한 경각심이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 애니고마(Enigma) 암호를 해독해 승패를 결정지었던 사례를 언급하며, 암호 체계가 한 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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