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당귤만 나면 어쩌지" 6학년 소년의 농담이 가파도에 가져온 기적
감귤나무가 없던 가파도에 6학년 초등학생의 순수한 꿈이 담긴 첫 감귤나무가 심어졌다. 청보리 물결로 유명한 이 섬에 찾아온 작은 기적을 담았다.
제주도 남서쪽 끝, 바람과 파도가 섬의 하루를 결정하는 곳. 마라도보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은 섬 가파도는 봄이면 초록빛 청보리 물결로 일렁인다. 마라도보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이 섬은 1842년부터 주민이 거주하기 시작해 현재 3백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다. 180여 점의 고인돌이 발견될 만큼 고대의 역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올봄에만 1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갈 만큼 매력적인 이 섬에는, 최근 아주 특별한 '새 식구'가 찾아왔다. 바로 가파도 땅에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감귤나무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6학년 범준이의 꿈이 현실로
가파도에는 원래 감귤나무가 없었다. 척박한 환경과 거센 바람 때문이었을까. 이곳 아이들에게 귤은 상상 속의 과일에 가까웠다. 이 정적을 깨뜨린 건 가파도 초등학교 6학년 범준이의 순수한 질문이었다. 범준이는 "바당귤만 나면 어쩌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가파도에도 감귤을 심으면 귤을 실컷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과수원을 만들어 과일을 심고 싶다는 꿈을 담았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한 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귤이 나지 않는 섬에서 귤을 심겠다는 아이의 이야기가 마치 귀여운 농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 속 출연자는 "처음에는 감귤 연구소에서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가 되어버려서 놀라웠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기적을 만든 셈이다. 연구소의 도움으로 양지바른 곳에 마련된 터에 감귤나무가 심어졌고, 아이들은 고사리손을 보태며 새로운 식구를 맞이했다. "제주에도 이런 것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하니, 가파도에도 이런 게 생기는 것"이라는 말처럼, 아이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바람의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해녀와 농부
가파도의 삶은 자연의 리듬을 그대로 따른다. 농부들은 바람에 강한 보리를 경작하며 겨울 농사를 짓는다. 봄이 오면 섬 전체가 초록색으로 변하며 상춘객들을 맞이하는데,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사월에는 정기 여객선이 다니는 모술포 운진항의 배편을 늘려야 할 정도로 방문객이 많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삶을 일궈온 사람들의 치열함이 있다.
가파도의 바다는 해녀들에게 풍요로운 '바다 밭'이다. 뱃길로 십여 분, 약 5km 정도 떨어진 바다밭에 도착하면 해녀들의 작업이 시작된다. 올해는 모자반이 풍년이고,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연산호도 만발했다. 8년 차 해녀 용해 씨를 비롯해, 기량이 뛰어난 상군 해녀들은 매일 긴장 속에서 바다로 뛰어든다. "내가 숨을 쉬는 세계가 아니니까 항상 긴장한다"는 말은 가파도 해녀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이가 많거나 실력이 낮은 해녀들은 수심 4m 내외의 연안에서 갯물질을 하며 삶을 이어간다. 거센 해류 속에서 자란 가파도 미역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낮은 지붕과 바람이 주는 위로
도심의 높은 빌딩 숲에 지친 이들에게 가파도는 낮은 지붕과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주는 위로의 공간이다. 가수 최백호 역시 가파도의 매력에 대해 "도심의 높은 빌딩들에 지쳐 있는 도시인들에게 낮은 지붕들과 이 바람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겨울의 황량함마저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며 가파도의 또 다른 얼굴을 전했다.
청보리밭의 초록 물결 너머, 이제 가파도에는 아이의 꿈이 담긴 감귤나무가 자라나고 있다. 바람의 섬 가파도가 써 내려가는 새로운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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