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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채 없이도 '완벽한 맛', 35년째 직지사 밥상을 책임지는 엄마의 손맛

오신채를 쓰지 않고도 버섯과 견과류로 깊은 맛을 내는 직지사 총괄 원주 지혜심 보살과, 5살 때부터 엄마의 밥상을 먹으며 자란 딸 하윤 씨의 따뜻한 일상을 담았습니다.

임도현
입력
오신채 없이도 '완벽한 맛', 35년째 직지사 밥상을 책임지는 엄마의 손맛
▲ 주방에서 두 여성이 커다란 팬에 전을 부치고 있다.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시간 직지사의 하루는 예불 소리와 함께 시작됩니다. 달빛을 받으며 출근한 한 여성이 가장 먼저 공양간 한쪽에 마련된 불단에 향을 올립니다. 1,600년 역사를 간직한 고찰 직지사에서 스님들의 수행을 돕고 불자들에게 건강한 밥상을 선물하는 총괄 원주, 지혜심 보살입니다.

오신채를 대신하는 버섯과 견과류의 깊은 맛

사찰 음식이라고 하면 흔히 담백함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직지사의 밥상은 조금 다릅니다.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사찰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재료, 즉 파, 마늘, 부추, 달래, 무릇 같은 '오신채'가 전혀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지혜심 보살은 버섯과 견과류를 활용해 맛의 빈자리를 채웁니다.

EBS 다큐 영상에 따르면, 지혜심 보살은 365일 삼시세끼 식단을 짜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메뉴는 매우 다채롭습니다. 표고와 호박으로 맛을 낸 순두부찌개, 밤과 연근을 함께 넣은 가을 조림, 올리브 오일과 꿀을 버무린 토마토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채개장(채소 육개장)'이나 우엉과 버섯을 넣은 만두 튀김처럼, 사찰 음식의 틀을 깨면서도 정갈한 메뉴들이 눈길을 끕니다. 35년째 이 밥상을 먹어온 한 스님은 "다른 데 가서 먹으면 부족한 것을 여기서 바로 채워진다"며 지혜심 보살의 음식을 치켜세웠습니다. 24살 때부터 35년 동안 보살님의 밥을 먹어온 스님에게 그녀는 엄마이자 큰 누님 같은 존재입니다.

5살 때부터 시작된 '직지사'라는 이름의 놀이터

이 따뜻한 밥상 곁에는 엄마의 뒤를 이어 직지사에서 삶을 일궈가는 딸, 하윤 씨가 있습니다. 다섯 살 무렵부터 새벽마다 일터로 향하는 엄마를 따라다녔던 하윤 씨에게 직지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놀이터이자, 엄마의 정성이 담긴 밥을 먹고 자란 삶의 터전입니다.

하윤 씨는 현재 직지사 내 카페를 운영하며 사찰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직지사는 "외갓집 같은 곳"입니다. 어린 시절 대웅전 앞 돌 위에서 찍은 사진 속 모습처럼, 그녀의 성장 과정에는 늘 직지사의 풍경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온 스님을 '삼촌 스님'이라 부를 만큼, 이곳의 구성원들은 혈연을 넘어선 깊은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삼촌 스님은 하윤 씨가 아기를 낳았을 때 장미 꽃 백 송이와 현차 백만 원을 준비해 축하를 전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박전부터 채개장까지, 500인분을 채우는 정성

지혜심 보살의 손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 끼에 500인분을 준비해야 하는 고된 일정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인근 농부로부터 기증받은 박을 채 썰어 '박전'을 부쳐내기도 했습니다. 시중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식재료지만, 채를 썰어 노릇하게 구워낸 박전은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영상 속 지혜심 보살은 "박을 채 썰어 전을 부치면 맛이 시원하고 괜찮다"며 노릇하게 부쳐내는 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직지사 직원들에게 이곳은 "복지가 좋은 최고의 직장"으로 통합니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근무한 직원은 지혜심 보살의 밥상을 기다리는 팬 중 한 명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허기를 채우고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드는 지혜심 보살의 밥상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수행을 돕고 덕을 쌓는 하나의 과정이 되고 있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 소리와 사각사각 채소를 써는 소리 속에서, 직지사의 밥상에는 엄마의 사랑이 한층 더 깊게 담겨갑니다.

#직지사 #지혜심 #하윤 #사찰 음식 #오신채
임도현
임도현
하비이슈 · 문화·라이프 담당

하비이슈에서 문화·라이프 분야를 주로 취재합니다. 사회·이슈, 건강·과학 기사도 함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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