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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은 수행의 찌꺼기" 50년 동안 하루 14시간 캔버스와 싸운 거장의 고백

선반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여러 개의 빈 캔버스들

임도현
입력 2026.09.21 11:10
"내 그림은 수행의 찌꺼기" 50년 동안 하루 14시간 캔버스와 싸운 거장의 고백
▲ 선반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여러 개의 빈 캔버스들

예술은 화려한 기술의 전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캔버스 위를 채우는 화려한 붓질이겠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단색화의 선구자인 박서보 화백에게 예술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그는 "미술은 손재주가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에게 그림이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을 닦아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의 흔적이었다.

3살 아들의 '체념 섞인 낙서'에서 찾은 예술의 시작

박서보 화백의 대표작인 '묘법(Ecriture)' 시리즈의 탄생 배경에는 뜻밖에도 가족의 일상적인 순간이 있었다. EBS 다큐 영상에 따르면, 그의 예술적 영감은 세 살 무렵 둘째 아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시작되었다. 방안지 칸에 맞춰 글씨를 쓰려던 아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난 나머지 연필로 줄을 그어버린 것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박서보 화백은 거기서 '체념'을 읽어냈다.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기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비워내는 태도. 그는 이 '체념'의 정서를 예술의 핵심으로 삼았다. 기교를 뽐내기 위해 애쓰는 대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 그는 이를 "수행을 하기 위한 도구"라고 정의했다. 결국 그가 남기는 그림은 "수행 과정에서 남은 찌꺼기일 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루 14시간의 고독한 수행, "세상을 치유하는 도구"

그의 예술은 결코 낭만적이기만 한 과정이 아니었다. 20대 시절부터 2009년까지, 그는 무려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하루 14시간씩 캔버스와 씨름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다. 1982년부터 4~5년 동안 밤마다 홀로 한지 작업을 이어가는 등, 그는 예술을 인격을 완성해가는 '수신(修身)'의 과정으로 여겼다.

그가 이토록 치열하게 자신을 비워내고자 했던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의 치유'에 있었다. 그는 현대 사회를 스트레스와 시각적 폭력으로 인해 "지구가 온통 병동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휴식처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색을 치유의 도구로 끌어들였다. 하늘색과 바다색을 섞고 흰색을 더해 만든 작품 앞에서 그는 깊은 심호흡을 하며 자연과 교감했다.

박서보 화백은 예술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이 변하면 예술가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는 땅 밑에 흐르는 광맥을 모르는 것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찰나의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예술의 근간임을 강조했다. 그에게 예술은 손끝에서 나오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였다.

#박서보 #묘법 #단색화 #EBS #수행
임도현
하비이슈 · 문화 & 라이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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