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1 (월) 국내외 이슈 전문지
속보 미국 하천 뒤흔든 한국 가물치…외래종의 생태계 침입과 변화
홈 › 문화 & 라이프
문화 & 라이프

"물 아래 잠긴 고향" 50년 버틴 수몰민과 외지인이 만든 '예끼마을'의 온기

실내 탁자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임도현
입력 2026.09.21 11:09
"물 아래 잠긴 고향" 50년 버틴 수몰민과 외지인이 만든 '예끼마을'의 온기
▲ 실내 탁자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1976년, 낙동강에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34개 마을, 2만여 명의 삶의 터전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행정과 상업, 교통의 중심지였던 예안면 서부리는 그렇게 수몰됐다. 고향을 멀리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척박한 산비탈을 깎아 새로운 마을을 일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안동 '예끼마을'이다.

50년째 자리를 지킨 이발사, "고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터 잡았다"

예끼마을의 좁은 길목에는 50년째 자리를 지켜온 이발관이 있다. 수몰 전부터 지금까지 마을의 유일한 이발사로 활동 중인 강석수 어르신은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산비탈로 올라온 수몰민이다. 그는 "농토가 부족해 고향 사람들이 하나둘씩 위로 떠났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당시의 마음을 전했다.

강 어르신의 이발관은 단순한 영업장을 넘어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인근 네 개 면의 남자들이 모두 찾아올 정도로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몰렸던 시절도 있었다. 현재는 수몰민들과 외지에서 들어온 이주민들이 섞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 됐다. 영상 속에서는 30년 지기 친구인 수몰민과 이주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겼다.

강 어르신은 1976년 수몰 직후 맞이했던 첫 겨울의 기억을 떠올렸다. "가장 추운 날씨였다"는 그는, 당시 결혼식을 치렀던 기억을 나누며 "하늘에 별이 빠지면서 결혼식을 했다"고 회상했다. 댐 건설로 인해 삶의 기반은 바뀌었지만, 동고동락한 친구들과 함께 낯선 터전에 정을 붙이며 살아온 세월이 녹아있다.

"물 아래가 우리 집" 기억의 무덤이 된 안동호

마을 사람들에게 안동호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다리가 지나가는 물 아래, 바로 그곳이 예전 마을이 있던 자리다. "저 집 우리 집인데"라며 물 아래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시선에는 그리움이 서려 있다. 수몰 전 서부리는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풍요로운 중심지였다. 학생 수가 천 명이 넘을 정도로 활기찼던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영상에서는 어르신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수업 시작과 마칠 때의 소풍금 소리를 흉내 내는 장면이 그려진다. 한때는 상실의 아픔이 가득했던 안동호가, 이제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려주는 거울이 된 셈이다. 마을은 수십 년간 사람들이 떠나가는 곳이었으나, 최근에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예술가와 귀촌인이 가져온 새로운 활력, "고향은 사람 사이에 있다"

최근 예끼마을에는 새로운 이웃들이 들어오고 있다. 안동호의 풍광에 반해 9년 전 마을로 들어온 이미옥 씨 부부는 자연이 주는 선물인 산나물을 채취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방풍나물, 미나리, 참취 등 산에서 나는 나물들을 직접 채취해 '잡초 밥상'을 차려낸다. "베면 베일수록 새순이 나온다"는 나물을 데쳐 초장에 찍어 먹거나 부침개를 만들어 먹으며 자연의 맛을 즐긴다.

이들은 채취한 나물을 들고 마을 이발관을 찾는다. 50년 차 이발사 어르신에게 나물을 건네며 "함께 나누면 정이 깊어진다"는 마음을 전한다. 수몰민의 후손은 아니지만, 9년 동안 어르신들과 더불어 살며 스스로를 '마을 주민'이라 여기는 이들의 모습은 마을의 새로운 풍경이다.

또한, 미술 작가로 마을에 들어온 새로운 이주민은 낡은 집을 리모델링하며 갤러리를 준비하는 등 마을에 예술적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댐이 강을 막아도 새로운 물이 계속 물길을 밀어내듯, 예끼마을은 수몰의 기억 위에 이주민들의 새로운 인연과 온기를 더하며 흐르고 있다. 고향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람 사이에 정이 통하는 공동체로서 다시 숨 쉬고 있다.

#예끼마을 #안동호 #안동댐 #서부리 #강석수 #수몰민 #이주민
임도현
하비이슈 · 문화 & 라이프 담당
기자의 다른 기사 ›

관련 기사

600년 전 자금성 뒷골목의 삶, 베이징 '후퉁'에 남은 서민들의 소울푸드

600년 전 자금성 뒷골목의 삶, 베이징 '후퉁'에 남은 서민들의 소울푸드

2026.09.21
숭례문 앞 참수형까지, 영조가 '술'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 이유

숭례문 앞 참수형까지, 영조가 '술'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 이유

2026.09.21
"물 반 전어 반" 서천부터 속초까지, 식도락가들이 가을 바다로 몰려가는 이유

"물 반 전어 반" 서천부터 속초까지, 식도락가들이 가을 바다로 몰려가는 이유

2026.09.21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