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도 하차벨도 없어요" 42년째 섬 주민의 발이 된 청산도 버스의 특별한 규칙
전남 청산도의 유일한 노선 버스는 정류장과 하차벨 없이도 42년째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승객이 원하는 곳이 곧 정류장이 되는 청산도 버스의 특별한 풍경을 담았습니다.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 섬에는 수많은 관광버스가 지나가지만, 정작 섬 주민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노선 버스는 단 한 대뿐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섬의 혈관 역할을 해온 이 버스는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류장도, 하차벨도 필요 없습니다"
EBS 다큐 영상에 따르면, 청산도의 버스는 일반적인 대중교통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버스가 가는 길목에는 따로 정해진 정류장이 없으며, 내릴 때 누르는 하차벨조차 필요 없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은 섬의 특성을 고려해, 승객이 원하는 곳이 곧 정류장이 되고 내리고 싶은 곳이 곧 종점이 된다. 영상 속 출연자는 "사람이 정류장이 될 수 있는 건 기사와 승객들이 함께 보낸 42년이라는 세월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요금 지불 방식 또한 이채롭다. 기사가 출발 전 승객에게 직접 차비를 받는 방식인데, 구간마다 요금이 조금씩 다르지만 승객들은 묻지 않고 알아서 요금을 낸다. 영상에서는 이를 두고 "시골 양반들이라 사람들이 순수해서 자기 구간 요금이 다 머리에 인식돼 있다"고 전했다. 버스는 선착장과 종점을 오가며 배 시간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움직인다. 배에서 내린 주민들이 기다림 없이 바로 버스에 올라탈 수 있도록 버스가 사람을 기다려주는 구조다.
경적 소리가 알려주는 섬마을의 시간
청산도의 버스는 도로가 막히지 않았음에도 종종 경적을 크게 울린다. 이는 단순히 주의를 환기하기 위함이 아니다. 들판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버스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신호'다. 영상에 따르면, 경적 소리는 주민들에게 "이제 버스 탈 시간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면,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 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섬 주민들에게 이 경적은 일상의 리듬을 알려주는 중요한 소리다.
버스 안에서는 때로 이색적인 풍경도 펼쳐진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장터에서 파는 먹거리를 사기 위해 잠시 내리는 승객들이 있다. 일반적인 노선 버스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열 번 내려도 내려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연하다. 기사는 승객이 물건을 사러 내릴 때 거부하기보다, 때로는 승객을 마중 나가는 특별한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42년 무휴, 가족의 시간마저 버스에 맞춘 삶
42년 동안 김봉안 씨의 버스는 자식들의 결혼식 날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섬의 유일한 대중교통이기에, 버스가 멈추면 섬의 이동권이 끊기기 때문이다. 특히 몸이 아픈 주민들에게 이 버스는 생명줄과 같다. 병원에 가기 위해 먼 길을 걸어야 하는 오지 마을 주민들에게 김봉안 씨의 버스는 가장 간절한 존재다.
이러한 책임감은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버스 종점 바로 앞에 집이 있는 김봉안 씨의 가족들은 버스 시간표에 맞춰 생활한다. 영상에서는 "운전대를 잡은 28살 청년이 어느새 70대가 되었다"며, 버스 시간 때문에 아이들의 졸업 사진에 찍히지 못하거나 명절에도 쉬지 못했던 세월을 전했다. 하지만 마지막 배가 들어오는 시간,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 주민들이 "이제야 집에 온 것 같다"며 안도하는 모습은 이 버스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섬 주민들의 안식처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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