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없이 1,000m 낚싯줄로... 흑산도 어부들이 겨울 홍어를 기다리는 법
식탁에 앉아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의 모습
검푸른 겨울 바다, 흑산도 예리항을 박차고 나가는 배 한 척이 있다. 쉼 없이 요동치는 파도를 뚫고 흑산도에서 북서쪽으로 5시간을 더 달려야 도착하는 곳. 그곳에서 어부들은 한 해의 마지막 조업을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산란기를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오른 홍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미끼 대신 '길'을 노린다, 흑산도 전통의 주낙 낚시
흑산도 홍어잡이는 육지의 낚시와는 결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미끼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1,000m가 넘는 긴 낚싯줄에 '7'자 모양의 바늘과 추가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린 '주낙'을 이용한다. 홍어가 다니는 길목에 이 주낙을 미리 던져놓고 며칠을 기다리는 방식이다. 바닥을 타고 이동하는 홍어의 습성을 정확히 간파한 흑산도만의 전통 방식이다.
하지만 기다림이 늘 결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며칠 전 던져놓은 주낙을 올려봐도 빈 바늘뿐이거나, 홍어 대신 아귀가 걸려 올라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귀는 홍어잡이 배의 단골 손님 중 하나다. 심지어 겨울임에도 해수 온도가 높은 탓에, 건져 올린 홍어에 옆새우(엽새우)가 달라붙어 상품 가치를 잃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바다에서 죽은 지 오래되어 뻣뻣하게 굳은 홍어를 '뻣뻣이'라 부르며 아깝지만 버려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선장들은 "저 바다로 가면 수영장 같은 곳에 발에 붙은 벌레가 있다"며, 홍어에 붙은 엽새우의 존재를 언급하기도 한다.
"암컷이 3배 더 비싸요" 선장의 눈이 결정하는 만선의 가치
홍어잡이의 성패는 8할이 선장의 경험에 달려 있다. 34년간 흑산도 바다를 지켜온 심동열 선장은 홍어가 지나다니는 길을 찾아내기 위해 매일 성실히 일지를 기록한다. 배 위로 홍어가 올라올 때마다 선장은 암수 구별과 크기, 품질을 순식간에 판단해 갑판에 지시를 내린다. 홍어는 내장이 상하지 않게 배 쪽을 피해서 찍어야 하며, 올라오는 홍어를 놓치지 않도록 재빠르게 갈고리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긴박하게 이어진다.
홍어의 성별은 꼬리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수컷은 꼬리 양쪽으로 두 개의 생식기가 달려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큰데, 암컷이 수컷보다 세 배 정도 더 비싸게 팔린다. 선장의 감각이 곧 수익으로 직결되는 이유다. 만약 홍어가 줄줄이 걸려 올라오는 '만선'의 순간이 오면, 거친 파도 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탄성으로 바뀐다. 10kg은 족히 나갈 법한 대물 홍어가 줄줄이 올라올 때, 어부들은 비로소 만선의 기쁨을 누린다.
함께 밥을 먹어야 진짜 '배사람', 좁은 선실의 밤낮 없는 조업
조업 중에는 밤낮이 없다. 한 번 출항하면 사나흘 동안 쉼 없이 이어진다. 배 위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부들은 함께 밥을 먹어야 비로소 같은 배를 탄 '배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조업 중에는 그날 잡은 물고기에 따라 메뉴가 결정된다. 배 위에는 전통적으로 식사를 담당하는 '파주'가 존재하며, 고향에 가족이 살 집을 짓겠다는 꿈을 안고 배에 오른 외국인 선원들도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이들은 서로의 언어로 인사를 나누며 고된 시간을 견뎌낸다.
조업이 끝나면 잡은 홍어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갑판 아래 어창에 얼음과 섞어 보관한다. 8시간 넘게 이어진 조업 끝에 찾아오는 짧은 휴식은 갑판 아래 선실에서 이루어진다. 하루 종일 바닷물에 젖은 작업복을 말리고, 장화 속에서 퉁퉁 부은 발을 주무르며 어부들은 짧은 잠을 청한다. 달빛이 드리운 고요한 밤바다 위로 파도 소리만이 흐르는 가운데, 내일의 조업을 위해 선원들은 잠시 눈을 붙인다.
위판장의 긴장감과 산지의 특권, 흑산도 홍어의 명성
조업을 마친 배가 위판장에 도착하면 긴장감이 감돈다. 배에서 옮겨진 홍어들은 성별과 품질, 무게에 따라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거친다. 명품 흑산도 홍어임을 인증하기 위해 일일이 QR 코드를 부착하기도 한다. 선장들에게 위판장은 그동안의 조업 성적표를 받는 자리와 같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모임이 줄어들며 홍어 가격이 반 토막 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육지에서는 주로 삭힌 홍어의 톡 쏘는 맛을 즐기지만, 흑산도 현지에서는 싱싱한 홍어를 그대로 즐기는 것이 산지의 특권이다. 과거 남자들만 드나들던 위판장에 최초의 여성 중매인으로 등장했던 김정진 할머니는 이제 딸에게 그 대를 물려주었다. 딸은 현재 흑산도의 '큰손'으로 불리며 모녀가 홍어의 맛을 전하고 있다. 거친 파도를 뚫고 올라온 흑산도 홍어는 그렇게 사람들의 식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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