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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실으면 누워버려" 험한 산길 묵묵히 걷는 당나귀와 산골 사나이의 동행

붉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성이 나무가 우거진 야외에 서 있다.

임도현
입력 2026.09.21 11:09
"짐 실으면 누워버려" 험한 산길 묵묵히 걷는 당나귀와 산골 사나이의 동행
▲ 붉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성이 나무가 우거진 야외에 서 있다.

험준한 암봉이 솟아있는 경남 김해 무척산. 길조차 험하기로 소문난 이곳 산꼭대기에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반대하던 이들이 구국기도를 올렸던 작은 기도원이 있다. 1년 반 전부터 이곳의 관리를 맡게 된 이일우 씨의 일상은 여느 도시인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는 의젓한 당나귀 '크로스'와 말썽꾸러기 '크라운', 두 마리의 당나귀뿐이다.

"짐 실으면 누워버려" 거친 산길의 길잡이, 당나귀 크로스

무척산의 지형은 가파르고 험하다. 이일우 씨는 한 달에 두 번씩 당나귀 크로스의 도움을 받아 산 위로 생필품을 나른다. 산 위 기도원까지 생필품을 옮기는 과정은 이 씨에게 '태산에 오르는 것 같은 고행'이다. 하지만 당나귀 크로스는 이 험한 길에 이미 이골이 난 듯, 길잡이 역할을 넘어 스스로 쉴 자리까지 정할 정도로 능숙하다.

물론 당나귀와의 생활이 늘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영상 속에서 크로스는 짐을 실으면 갑자기 자리에 누워버리거나, 가까이 오면 뒷발질을 하는 등 거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 씨는 "아직 길이 안 들었다"며 웃어넘기지만, 산중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그는 산 위에서 직접 짓는 밭농사로 식량을 해결하는데, 고구마, 파프리카, 토마토, 당근 등을 재배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수확한 작물의 6할 정도가 당나귀들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같이 밥을 나눠 먹은 사이가 식구"라는 말처럼, 그는 당나귀들과 식사를 공유하며 산중의 적막을 달랜다.

"겨울엔 외롭죠" 산중 생활의 고독을 달래는 '사랑스러운 적'

도시에서 사회생활만 하던 이 씨에게 산골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다. 농사도 처음이라 서툴고, 겨울을 나기 위해 산 아래에서 땔감을 직접 짊어지고 올라와야 하는 수고로움도 감내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겨울철의 고립감은 그를 힘들게 한다. "특히 겨울에는 외롭다, 사람들이 안 올라오니까 견디기가 힘들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말썽꾸러기' 당나귀들이다. 식탐이 많아 툭하면 말을 듣지 않는 당나귀들은 이 씨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적'이다. 밭에서 캔 고구마를 나눠 먹고, 당근을 간식으로 챙겨주는 과정에서 그는 산중 생활의 위안을 얻는다. 적막한 산속에서 당나귀들의 요란한 소리와 움직임은 그가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생생한 신호다.

20대부터 80대까지, 평창 고갯마루 400마리 흑염소와의 우정

강원도 평창, 해발 700미터의 넓은 초지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축구장 14개 크기에 달하는 광활한 목장에서 400여 마리의 흑염소가 뛰노는 이곳의 주인은 박영식 씨다. 그는 형제들이 도시로 떠나고 부모님조차 포기하려 했던 목장을 홀로 지켜낸 인물이다. 20년째 목장을 관리해온 그는 이제 흑염소들을 단순한 가축이 아닌 '벗'으로 여긴다.

목장 관리의 핵심은 끊임없는 순찰이다. 밤사이 돼지가 구멍을 뚫어 염소들이 탈출하거나, 녀석들이 작물을 다 뜯어먹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짐승이니까 마음을 알기 어렵다"며, 말 안 듣는 염소들에게 뽕나무 가지를 특식으로 내어주며 달랜다. 20대부터 80대까지, 청춘을 함께한 친구들이라는 그의 말처럼 흑염소들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힘들 때도 많지만, 하는 동안은 재밌으려고 노력한다"는 그의 말에서, 동물과 함께 묵묵히 삶을 일궈가는 노년의 단단한 의지가 느껴진다.

EBS 다큐 영상에 따르면, 이들은 각기 다른 산과 초원에서 동물들과 함께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지만, 이들에게 동물은 고립된 삶을 연결해주는 유일하고도 다정한 통로다.

#무척산 #이일우 #크로스 #크라운 #평창 #박영식 #흑염소 #당나귀
임도현
하비이슈 · 문화 & 라이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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