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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705m 금산산장 할머니가 기다리는 '한 달에 한 번' 약속

남해 금산 정상 부근 금산산장을 20여 년째 지켜 온 이정순 할머니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산장에 꼭 오겠다고 약속한 언니 김자야 할머니가 있습니다. 2013년 방송된 EBS '한국기행'이 두 사람의 우정을 담았습니다.

해발 705m 금산산장 할머니가 기다리는 '한 달에 한 번' 약속
▲ 한옥 배경 앞에서 꽃무늬 셔츠를 입은 여성이 손을 뻗으며 대화하고 있다.

남해 금산 정상(705m) 부근에는 4대째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금산산장이 있습니다. 2013년 7월 1일 방송된 EBS '한국기행 - 남해 1부 금산의 약속'은 20여 년째 등산객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이 산장을 지켜 온 이정순 할머니와, 한 달에 한 번씩 산장에 꼭 오겠다고 약속한 김자야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비단 대신 이름을 선물받은 산, 금산

금산이라는 이름에도 약속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영상 설명에 따르면 약 610년 전 태조 이성계는 금산에서 왕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왕위에 오른다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조선 건립에 성공한 이성계는 산을 비단으로 덮는 대신 '비단 금' 자를 써서 '금산'이라는 이름을 산에게 선물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면 아래로 아름다운 바닷길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금산 38경이 빼곡히 자태를 뽐냅니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가 세웠다는 고찰 보리암은 전국 3대 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유일의 산악공원인 금산은 평소에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1971년 대학교 1학년 때 왔던 기억을 안고 다시 찾은 등산객도 있습니다. 40여 년이 지나도 남해 금산은 그대로입니다. 석가세존이 뚫고 지나갔다는 쌍홍문 안에는 구멍이 세 개 있는데, 세 구멍에 모두 돌을 던져 넣으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자고 가는 손님이 제일 좋아' 산장 할머니의 하루

마을을 내려다보는 바위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장에는 홀로 산장을 지키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산장 생활 20여 년, 할머니는 그사이 파리잡이의 달인이 됐습니다. 할머니는 손님이 자러 오면 너무 좋다며 손님이 제일 반갑다고 말합니다. 손님 맞을 준비는 항시 대기 상태이고, 신선이 앉았던 제일 좋은 자리라는 명당도 확보해 두었습니다. 누구라도 이 자리에 앉으면 신선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리입니다.

산장에서 할머니의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여름에 이곳에 앉으면 바람이 솔솔 들어와 시원하고, 손님이 오나 안 오나 싶어 길목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내려오는 것이 보이면 무엇을 드실지 물어본다는 할머니는 이 자리가 좋다고 말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설거지 거들러 오는 언니

영상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은 금산에서 만나 언니, 동생의 인연을 맺었고, 언니인 김자야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산장에 꼭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꼬박꼬박 찾아 주는 손님인 언니는 금산산장의 귀빈입니다.

이정순 할머니는 두 사람의 인연을 이렇게 떠올렸습니다. 산이 좋아 찾아온 언니가 손님이 너무 많아 일이 쌓였던 날 일을 거들어 줘 너무 고마웠고, 함께 밥을 먹자고 해 밥을 같이 먹고 하룻밤 자고 갔다는 것입니다. 한 달 뒤에 또 찾아온 언니는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고 또 설거지를 해 줬고,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오가며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언니가 오는 날이면 산장 할머니는 소박하고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립니다. 텃밭에는 무공해 채소가 가득하고, 우리 콩과 남해 물로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는 산장의 간판 요리입니다. 산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료는 많지 않지만 할머니는 재료를 아끼지 않습니다.

4대째 이어 온 막걸리, 산 위에서 나누는 한 사발

막걸리 맛에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산장에는 막걸리가 떨어질 새가 없습니다. 4대째 이어 오는 금산산장에서 할머니는 2대 할머니로부터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막걸리 맛은 첫째가 손맛, 둘째가 물맛이라는 설명도 이어집니다. 막걸리를 담글 때는 고두밥이어야 좋기 때문에 흰쌀밥을 한 솥 가득 고슬고슬하게 지은 뒤 멍석 위에 살살 펼치고, 그 위에 누룩을 부어 밥과 골고루 섞습니다. 이제는 눈 감고도 할 만큼 많은 막걸리를 만들었습니다. 영상에서는 이게 막걸리 맛이 아니라 주전자 맛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할머니의 손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막걸리를 찾아 이 산장에 오는 한 할머니는 막걸리를 빚을 것입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더 이상 손님이 찾아들지 않는 시간, 두 할머니는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입니다. 이 자리는 앉아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평등합니다. 신선도 사람도, 손님도 주인도 모두 산 위에서 굽어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언니는 떠나고 없었지만, 산장 할머니는 외롭지 않습니다. 다음 달에 오겠다고 약속한 언니가 있고, 산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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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현
임도현
하비이슈 · 문화·라이프 담당

하비이슈에서 문화·라이프 분야를 주로 취재합니다. 사회·이슈, 건강·과학 기사도 함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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