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에 서울 자가 매입" 영끌로 산 60년 된 구옥, 세 번의 리모델링으로 완성된 가족의 역사
소파에 나란히 앉아 미소 짓고 있는 남녀의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멈춰있는 듯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띄는 풍경이 있다. 동네의 보물이라 불리는 옛 정서가 남은 우물터 옆, 대문 틀만 덩그러니 남은 채 문이 없는 집. 6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이 낡은 구옥은 한 부부의 인생과 함께하며 세 번의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29살 건축학도의 '영끌' 선택, 곰팡이 가득했던 구옥과의 첫 만남
이 집의 주인공인 남편 신민현 씨는 건축 전공자로, 과거 대기업 건설사에 재직했던 이력이 있다.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대 후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청약통장을 깨고 대출을 50%까지 받는 등 최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는 이른바 '영끌'을 통해 후암동의 구옥을 매입했다. 당시 그는 군 생활 동안 모은 돈까지 모두 쏟아부어 서울에 자가 주택을 마련했다.
하지만 꿈꾸던 멋진 단독주택의 모습은 아니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아내 정유진 씨에게 처음 보여준 집은 오르막 계단 옆에 위치한, 곰팡이가 창궐하는 허름한 상태의 집이었다. 민현 씨가 어린 나이에 수도권에 자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진 씨는 처음엔 설레기도 했으나, 실상은 상상하던 멋진 집이 아닌 열악한 구옥이었다. 그럼에도 민현 씨는 이 공간에서 자신의 건축적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믿었다. 1959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안방 천장에는 60여 년 전의 흔적이 남아있고, 아들 의철이가 태어났을 때 천장의 구조를 보며 웃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초기 거주 당시 집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지붕 한쪽은 목재 기와가, 다른 한쪽은 샌드위치 패널이 덧대어져 있었고, 지붕 사이로 빗물이 새어 들어와 천장 구멍으로 하늘이 보일 정도였다. 부부는 우선 물이 모이지 않도록 홈통의 나뭇잎을 치우고 지붕에 발수제를 도포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결국 기와를 들어내고 배수판을 설치하고서야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단열재를 꼼꼼히 시공하며 비바람을 막아내는 과정 자체가 이 집과 가족이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투쟁이었다.
부엌도 없던 신혼집, 아내의 소원을 담아 만든 욕조와 창고의 변신
첫 번째 리모델링 단계에서 부부의 삶은 '생존'과 '취향' 사이를 오갔다. 당시 집에는 제대로 된 부엌 공간조차 없었다. 임신 전까지는 1인용 인덕션 두 개를 거실에 두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설거지는 화장실에서 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아내 유진 씨의 소원은 명확했다. "주택에 살 거라면 욕조가 있는 화장실을 꼭 갖고 싶다"며, "욕조를 해주고 안전하게 보안을 지켜달라"고 남편에게 다정하게 부탁했다.
건축 전공자인 남편은 아내의 꿈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집 외부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을 집 안으로 연결해 큰 화장실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재래식 화장실의 단차 덕분에 별도의 공사 없이도 아내가 원했던 매입 욕조를 놓을 수 있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아내를 향한 다정한 배려가 담긴 공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한편, 기존의 방 중 하나는 벽을 허무는 대신 구조적 안전성을 위해 구멍(개구부)으로 연결하여 아이의 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후 아들 의철이가 태어나면서 두 번째 리모델링이 시작되었다. 전 주인이 창고로만 쓰던 높은 층고의 공간을 부엌 겸 거실로 개조하며 온전한 가족의 공간을 구축했다. 특히 높은 층고를 활용해 만든 '다락 거실'은 이 집의 백미다. 부부만을 위한 작은 다락 공간을 만들고, 눈높이에 맞춰 TV를 벽 상단에 부착해 공간 효율을 극대화했다.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채광과 개방감은 좁은 구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현재 이 공간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데, 과거 TV가 있던 자리는 아이의 놀이 공간(칠판 설치)으로, 두 번째로 개조한 부엌 자리는 예능 작가인 아내의 소중한 작업 공간으로 변모했다.
퇴사와 새로운 도전, 별채를 숙소로 탈바꿈시킨 세 번째 리모델링
집의 변화는 가족의 생애 주기와 궤를 같이한다. 남편 민현 씨는 직업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지방 발령 문제와 아내 유진 씨의 직업(예능 작가)을 존중하기 위해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그는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존중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기로 했고, 이웃 집주인의 제안으로 별채를 매입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부부는 매입한 별채를 외국인 전용 숙소로 리모델링했다. 본채가 가족의 역사를 쌓아가는 공간이라면, 별채는 부부의 새로운 경제적 기반이자 사회적 공간이 되었다. 60년 된 구옥은 세 번의 리모델링을 거치며 단순히 낡은 집이 아닌, 가족의 성장과 변화를 담아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재탄생했다.
창문을 통해 동네 고양이를 구경하고 이웃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는 아이의 모습은, 대문을 없애고 마을과 경계를 허문 이 집이 가진 가장 큰 선물이다. "인생은 선점"이라며 창을 먼저 열어 세상과 마주하는 부부의 태도는, 낡은 집을 고쳐 쓰는 행위가 단순한 수리를 넘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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