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명 행렬이 한강을 건넌 방식, 220년 전 정조의 '지상 최대 축제' 재현
220년 전 정조대왕이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6,000명의 인원을 이끌고 행했던 을묘년 능행차가 서울 도심에서 재현됐다.
220여 년 전, 조선의 한 왕이 6,000명의 인원을 이끌고 거대한 행렬을 이뤄 한강을 건넜다. 단순한 이동이 아닌, 백성과 함께 즐기기 위해 기획된 조선 역사상 가장 성대했던 축제였다. 최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 역사적 순간이 재현됐다.
"백성과 함께 행복하고자 했다" 정조의 정치적 결단과 축제
KBS 다큐 영상에 따르면, 이번 재현 행사는 1795년(을묘년)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찾아갔던 여정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8일간의 먼 길을 떠났으며, 이번 재현은 그중 이틀간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갔다.
정조의 능행차는 단순한 행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상 속 출연자는 정조가 화성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부친인 사도세자를 복권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한 행차였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정조는 구중궁궐을 벗어나 백성들의 삶을 직접 확인하고, 모두가 행복한 태평성대를 꿈꿨다. 실제로 영조가 연 1.5회 정도 능행을 했던 것에 비해, 정조는 1년에 3번 가까이 능행을 할 정도로 백성과의 소통에 적극적이었다.
이 화려한 광경은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기록물로 남겨졌다. 정조는 화원들에게 이 광경을 화폭에 담게 했고, 이를 활자와 판화가 포함된 인쇄물로 만들어 배포했다. 덕분에 2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행렬 규모와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6,000명의 행렬, 한강을 건너는 '부교'의 지혜
이번 재현 행렬은 창덕궁 돈화문을 시작으로 숭례문을 지나 한강에 다다랐다. 당시 동원된 인원은 6,000여 명, 말은 400여 필에 이르는 조선 최대 규모였다. 행렬은 경기 감사와 총리 대신을 선두로 별기대, 마병, 복군, 그리고 형형색색의 깃발 부대가 뒤를 잇는 장관을 연출했다.
가장 큰 고비는 한강이었다. 220년 전 정조는 이미 배와 배를 연결해 다리를 만드는 '부교' 방식을 사용해 대규모 인원을 이동시켰다. 이번 재현에서도 육군 공병 부대 200여 명이 투입되어 이 지혜를 재현했다. 첨단 장비를 활용해 폭 10m, 길이 300m에 달하는 임시 다리가 한강 북단과 노들섬을 잇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군 관계자는 영상에서 "우리 선조들이 220년 전에 배를 연결해 부교를 설치 운영했던 창조적인 지혜를 첨단 장비로 재현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완성된 부교를 통해 행렬은 무사히 강을 건넜으며, 시민들 또한 이 임시 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며 축제의 현장을 함께 즐겼다.
도성을 벗어나 수원 화성까지, 100리의 여정
창덕궁을 출발한 행렬은 용산과 노량진을 거쳐 한강을 건넌 뒤, 시흥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후 안양과 의왕을 지나 수원 화성에 도착하기까지 약 100리에 달하는 긴 여정이 이어졌다. 왕이 도착하기 전 마을에는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복병을 배치하는 등 삼엄한 경비 체제도 함께 가동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과 외국인들은 조선 시대의 행차를 직접 목격하는 특별한 경험에 감탄했다. 한 외국인 시민은 "220년 전과 동일한 대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전했다. 220년 전 정조가 꿈꿨던 '백성과 함께하는 축제'가 현대의 서울 도심에서 다시 한번 재현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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