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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천 원의 삼만 리 길, 500원 동전 쥐려 거리로 나서는 노인들

거리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

한도경
입력 2026.09.21 11:10
하루 4천 원의 삼만 리 길, 500원 동전 쥐려 거리로 나서는 노인들
▲ 거리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48%를 상회하며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42만 명에 달하며 인구 10명 중 1명이 노인인 시대지만, 별다른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이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KBS 다큐 영상에 따르면, 자식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정부의 지원마저 닿지 않는 노인들은 매일 아침 차가운 공기를 뚫고 성당과 교회 앞으로 향합니다.

500원 동전을 찾아 떠나는 '스케줄표'

서울 시내의 한 성당 앞에는 매주 한 번, 500원의 동전을 받기 위해 백여 명의 노인이 줄을 섭니다. 장현순 할머니는 이 500원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자리를 잡습니다. 할머니의 손에는 서울 시내에서 무료로 돈을 나눠주는 종교단체와 식사를 제공하는 곳의 명단이 빼곡히 적힌 '스케줄표'가 들려 있습니다.

할머니는 요일과 시간대별로 동선을 짜서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잠원동역 인근에서는 500원과 라면 한 개를 받고, 목요일에는 성도교회에서 1,000원을 받는 식입니다. 사당역 인근의 식사 제공처를 확인하며 할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며 이동하는 이 고된 여정을 통해 하루 평균 4,000원 남짓을 손에 쥡니다. 한 달을 꾸준히 뛰면 약 12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깁니다. 이 돈은 할머니의 소중한 용돈이자 생계 수단입니다.

또 다른 노인 최행리 할아버지의 사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3일은 공공근로를 통해 20만 원을 벌고, 나머지 이틀은 거리로 나와 동전 받기에 나섭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돈을 받는 것에 망설임도 있었지만,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그런 망설임은 사라졌습니다. 집에 있으면 점심을 챙겨 먹기 어렵지만, 거리로 나오면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가로막힌 복지의 사각지대

노인들이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텅 빈 단칸방에서 느끼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장 할머니는 "내가 여기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생계 문제는 여전히 가혹합니다.

실질적인 부양 능력이 없는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영상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초수급 대상자 130만 명 중, 명목상 부양가족 때문에 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인구는 약 1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현행 부양의무자 기준이 빈곤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가난한 상황에서 본인의 노력이나 노동만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기는 매우 힘든 구조입니다.

10년째 홀로 살고 있는 김기식 할아버지의 삶은 이러한 사각지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가족과 연락이 끊긴 할아버지는 당뇨와 우울증을 앓으며 다섯 종류가 넘는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매일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받아오는 떡으로 끼니를 때우며, 40만 원 남짓한 수입에서 세금을 내고 나면 생활은 늘 모자랍니다.

고독사와 자살률, 무너지는 노년의 존엄

경제적 빈곤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지내다 숨진 채 발견되는 고독사 사례는 매년 8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의 한 지하방에서 발견된 72세 할아버지의 사례처럼, 청각 장애와 당뇨를 앓으며 홀로 지내던 노인의 죽음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 주에 한 번 들르던 도우미가 방문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공적인 연금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현재의 지원 수준으로는 노인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입니다. 50만 원 정도의 지원으로는 최소한의 품위 있는 생활조차 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근에는 80대 노모를 모시지 않겠다며 형제들이 다툼을 벌이다 친척을 폭행해 의식 불명에 빠뜨린 사건처럼, 자식과 사회 모두에게 외면받는 비극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속에,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낮아지는 한국 노년의 현실은 복지 확대와 사회적 관심이 시급함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 #OECD #KBS #노인 빈곤 #부양의무자 기준 #고독사
한도경
하비이슈 · 사회 & 이슈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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