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도까지 손으로 그린 엔지니어, 대한민국 IT의 시초 'A-501'의 기록
선반 위에 진열된 다양한 종류의 빈티지 라디오와 전자 장비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그 시작점에는 이름 없는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사투와 '빅 아이디어'가 있었다. KBS 다큐에 공개된 영상에서는 1959년 탄생한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통해 대한민국 전자 산업의 태동기를 조명한다. 불과 40년 전 전보로 겨우 연락하던 시절을 지나, 70년대 전화의 보편화, 81년 국내 최초 PC 탄생, 그리고 반도체 성공신화로 이어지는 흐름의 뿌리에는 이 작은 라디오가 있었다.
독일 기술 고문과 충돌한 '실용주의' 디자인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의 탄생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금성사는 독일인 기술 고문 헨케 씨를 스카우트해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제품의 디자인을 두고 현장 엔지니어들과 극심한 의견 대립을 겪었다. 영상에 따르면, 헨케 씨는 외형적인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과도한 부품 수입으로 이어져 제품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맞선 것은 실용성을 강조한 엔지니어들의 판단이었다. 당시 금성사 입사 멤버였던 김해수 씨는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하기 위해 실용적인 위주의 디자인을 주장했다. A-501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기능 위주로 설계되었으며, 백판넬을 나사로 조립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눌러 끼우는 방식으로 해서 쉽게 빠지는 구성을 갖췄다. 결국 회사 임원들의 투표를 통해 김해수 씨의 실용적인 안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채택되었고, 이 과정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헨케 씨가 사임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회로도조차 손으로 그리던 시절, 엔지니어의 손때 묻은 유산
A-501은 단순한 가전제품을 넘어 대한민국 전자 산업의 설계도를 품고 있는 유물이다. 영상 속에서는 30년 전 세상에 나오고 4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재구실을 하는 A-501의 내부를 통해 당시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기판(PCB)에는 설계자인 김해수 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영상에서는 기판에 'Switch positions'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47년 전 김해수 씨가 일일이 손으로 그려낸 회로도이자 대한민국 전자 산업이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는 증거다. 또한 백판넬을 나사로 조립하지 않고 눌러 끼우는 방식을 채택하는 등 1950~60년대 진공관 라디오로서는 구성 면에서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 설계가 적용되었다.
황학동에서 찾은 아버지의 기록, 기술의 역사가 되다
이 역사적인 라디오를 찾는 여정은 한 기술자의 딸인 김진주 씨의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김 씨는 아버지 김해수 씨가 생전에 남긴 기록을 통해 A-501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음을 확인했다. 김해수 씨는 2,000명의 응시자 중 최종 시험까지 살아남은 83명 중 한 명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미국산 라디오 회로도를 그려내며 금성사에 입사했다. 14살 때부터 7년간 일본 공업고등학교에서 라디오 조립 기술을 배운 그는 곧바로 라디오 개발 책임자가 되었다.
전파 기술자였던 장도영 씨의 수집품 속에서 발견된 A-501은 여전히 소리를 내며 과거의 기술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전국에 고작 선화대 남아있다는 소식 속에 어렵게 찾아낸 이 라디오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었던 엔지니어들의 의지를 담고 있다. 영상은 무모해 보였던 시작이 어떻게 위대한 역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며,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e-government와 CDMA 상용화, LTE 이동통신 개발로 이끈 기술적 근간이 바로 이들의 '빅 아이디어'였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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